프레시안  기사전송 2008-05-06 00:45 | 최종수정 2008-05-06 00:45

[분석] 미 정부의 '안전성' 주장을 믿을 수 없는 이유

[프레시안 이승선/기자]

미국 농무부가 4일 워싱턴 한국 특파원들을 대상으로 긴급기자회견을 갖고, "미국산 쇠고기는 안전하다"며 "미국 내 소들의 광우병 감염 가능성은 극히 낮다(extraordinarily low)"고 주장했다.

또한 미 농무부는 지난 4월 초 버지니아 주에서 한 여성이 인간광우병에 감염돼 숨진 것으로 알려진 데 대해서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예비조사 결과 이 환자가 인간광우병으로 사망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반박했다.

이러한 주장은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150여 명이 '인간 광우병'에 감염돼 사망했지만 영국 등 유럽에서 모두 발생했으며 미국에선 단 한 건도 인간 광우병에 의한 사망사건이 없었다는 주장을 반복한 것에 불과하다.

미국 내 소들의 광우병 감염 위험성이 극히 낮다며 미국 정부가 제시한 '과학적 근거'와 '광우병 위험'이 통제되고 있다는 국제수역사무국(OIE) 의 판정은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지난 2003년 12월 세번째 광우병 소가 발견되면서 미국산 쇠고기의 최대 해외 고객인 한국과 일본 등이 수입을 중단하자 도축되는 소들에 대해 검역을 대폭 강화했다.
▲유럽 국가들은 광우병에 대해 철저한 대책을 실시하고 있으나, 여전히 '광우병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전수조사와 표본조사의 차이


지난 2004년 6월부터 미국은 그동안 도축 소 가운데 매년 2만 마리를 대상으로 실시하던 광우병 검역을 1일 1000 마리로 확대, 2년간 70만 마리에 대해 광우병 검역을 실시했다. 미국에서 한 해 도축되는 소가 3500만 마리인 것으로 집계되고 있는 만큼 도축 소의 1%에 대해 이례적으로 검역을 실시한 것이다.

그 결과 광우병에 걸릴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되는 소가 4~7마리 정도만 발견됐을 정도로 광우병 위험이 잘 통제되고 있다는 것이 미국 정부의 주장이다. 지난 1990년대 초반 영국이나 아일랜드, 포르투갈, 스위스 등 15개 유럽국가에서 1년에 수백마리씩 광우병 감염사례가 발견된 것과는 전혀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다.

미국은 특히 작년 5월 국제수역사무국(OIE)이 미국을 '광우병 위험 통제국'으로 지정한 것을 내세워 국제적 기준에서 보면 미국이 '광우병 안전국가'라며 그동안 광우병 위험을 내세워 수입을 중단한 한국과 일본 등에 시장개방을 압박해왔던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내세우는 근거는 '과학적 근거'가 아니라 '통계에 의한 현혹'에 가깝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유럽 국가들이 1년에 수백마리씩 광우병 감염 소를 발견한 과정은 '전수조사'에 의한 것인 반면, 미국은 최대 1% 표본 조사에 의한 것이며, 지금은 0.05%만 표본조사하고 있어 결코 유럽과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유럽은 소에게 동물성 사료 급여 자체를 금지

게다가 광우병이 동물성 사료를 소에게 먹이면서 시작됐다는 연구 결과에 따라 유럽에서는 동물성 사료 자체를 금지시킨 반면, 미국은 97년 8월 소에게 직접 '반추동물의 육골분'을 먹이는 것만 금지했을 뿐, 여전히 돼지와 닭 육골분을 소에게 먹이고, 또 소 육골분을 돼지와 닭에게 먹이고 있다. 사실상 광우병 원인이 될 사료 급여가 중지된 것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인간 광우병 환자의 경우 미국에서 아직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미국 정부의 주장 역시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기는 어렵다.

미국의 광우병 소 발견시기는 2003년 12월이고, 광우병의 평균 잠복기는 10년 정도라는 점에서 10년 뒤인 2013년이 미국에서 인간 광우병이 집단발병 시기가 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영국에서도 광우병 소가 처음 발견된 이후 약 10년 뒤에 인간 광우병 집단발병이 있었다.

세계적으로 광우병의 진원지가 된 영국은 광우병에 걸린 쇠고기를 먹고 인간광우병에 걸린 환자만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162명에 달한다. 게다가 최장 수십년까지 개인마다 차이를 보이는 잠복기를 감안할 때 1980년부터 1990년까지 섭취한 광우병 감염 쇠고기를 통해 영국인 인간광우병 환자는 시간이 지나면서 1만4000명에 달할 것이라는 예측도 제시된 바 있다.

영국 정부는 1985년 광우병 소가 처음 발견된 뒤 인간에게 감염된다는 과학적 근거가 없다면서 국민을 호도해 오다가 1996년 인간광우병 환자가 나오면서야 뒤늦게 대책에 나섰다.

1990년 5월 영국 농업부 장관 존 검머는 네 살짜리 딸과 함께 방송에 출연, 광우병 쇠고기를 먹어도 인간에게 감염되지 않는다는 '과학적 사실'을 증명하겠다며 햄버거를 먹는 쇼를 벌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지난해 검머의 절친한 친구의 딸이 인간광우병에 걸려 사망했다.

유럽은 위험물질 식용을 전면금지

이런 뼈아픈 교훈으로 영국은 미국이 내세우는 '과학적 근거'가 불충분하다는 점을 깨닫고, 소의 뇌와 척수, 비장, 편도선 등 이른바 광우병 위험물질(SRM)에 대해 소의 월령과 관계없이 식용을 금지하는 조치를 이미 1989년에 시행했으며, 소에게 모든 동물성 사료를 금지시켰다.

또 인간광우병이 수혈이나 외과수술장비를 통해 쉽게 감염될 수 있다는 과학자들의 의견에 따라 영국은 1999년 이래 수혈용 혈액에서 감염경로가 될 가능성이 큰 백혈구를 제거했으며, 외과 수술장비를 통한 감염을 막기 위해 이 장비들을 소독하는 데 수천억 원을 투자했다.

유럽연합(EU)도 지난 2000년 프랑스 등 서유럽에 광우병이 급속히 확산됨에 따라 동물성 사료의 전면 금지조치를 내리는 등 광우병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EU는 2000년 말 프랑스에서 광우병에 걸린 소가 급증하고 독일과 스페인에서도 최초로 인간 광우병에 걸린 환자가 나타나자 즉각 농업장관회의를 열어 모든 동물에서 생산된 육골분, 육분을 동물사료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했다.

EU는 이어 생후 30개월이 넘은 소는 도살 후 뇌조직을 채취하여 조직검사를 실시하고, 검사를 받지 않는 30개월 이상의 소는 폐기토록 했다. 또 소의 두개골(뇌.안구포함)을 비롯해 척수, 척추, 내장 등 광우병 특정위험물질로 알려진 부위의 식용사용을 금지시키는 등 광우병 확산을 조기 차단하기 위한 강도높은 조치들을 잇달아 내놓았다.

EU 회원국들은 이 같은 예방조치 외에도 광우병이 발병된 이웃 국가들로부터 쇠고기 수입을 즉각 금지하는 등 광우병을 차단하기 위해 신속히 움직였다. 서유럽 전체로 확산되는 양상을 보이던 광우병 사태는 이처럼 EU의 강력한 대책 등에 힘입어 2003년 이후 광우병 소 발생률이 급감하는 등 진화에 어느 정도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지난 해 스위스에서는 추가로 보고된 광우병 감염 사례가 없었다. 영국과 아일랜드에 이어 유럽 국가로서는 세번째로 광우병 발생국가가 된 스위스가 1990년 11월 광우병 소가 처음 발견된 이후 강력하게 대처하면서 17년만에 달성한 성과다.

광우병이 스위스에서 가장 창궐했던 1995년에는 68건이 보고됐으나, 스위스 연방 정부가 강력한 광우병 대책을 실시하고 광우병 전담 태스크포스를 가동한 2001년부터 추가 감염 사례는 해가 거듭할수록 줄어들었다. 2001년 42건, 2002년 24건, 2003년 21건, 2004년 4건, 2005년 3건, 2006년 2건, 그리고 2007년에는 `제로'가 된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 등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07년 말 현재 유럽의 광우병 발병사례를 보면 진원지인 영국이 18만3000여 건으로 가장 많고, 아일랜드 1353건, 프랑스 900여 건, 포르투갈 875건, 스위스 453건, 스페인 412건, 독일 312건, 이탈리아 117건, 벨기에 125건, 네덜란드 75 건 등이다.

인간광우병 발병사례도 영국이 162건으로 압도적으로 많았고, 프랑스 11건, 아일랜드 4건, 포르투갈. 스페인 각 2건, 이탈리아 1건 등이다. 특히 스페인에서는 지난 해 12월과 지난 2월 인간 광우병으로 2명이 사망하는 등 유럽에서 광우병 공포는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이때문에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은 미국산 쇠고기는 아예 수입하지 않고 있다.

미국이 '광우병 위험 통제 국가'라는 국제수역사무국의 판정을 의심하게 만드는 사례도 계속 나오고 있다. 지난 2월 미국의 소비자 단체인 휴먼소사이어티가 병들고 부상한 소를 발로 차거나 심지어 지게차로 밀어 도살장으로 모는 장면을 담은 동영상을 공개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당시 이들 소가 보인 증세는 광우병 감염이 우려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소들이 불법 도축된 뒤 시중에 유통된 것은 물론 학교 등 각종 급식시설에도 공급된 것으로 확인돼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인 6만400여t의 쇠고기 리콜 사태로 이어졌다.

이래도 미국의 검역 당국을 믿을 수 있나?

또한 지난 4월 4일 미국 캔자스 주에 있는 한 도축장에서 특정위험물질(SRM)이 포함된 냉동 소머리고기를 시장에 유통시켰다가 리콜한 사실도 뒤늦게 드러났다. 미 농무부 식품안전검사국(FSIS)은 당시 캔자스주 검역당국의 검역결과 엘크혼 밸리 도축장에서 편도선 부위를 제거하지 않은 냉동 머리고기를 공급한 것이 드러나 자발적으로 리콜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편도선 부위는 식품안전검사국 기준을 보면 광우병을 유발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특정위험물질로 분류돼, 모든 연령대의 쇠고기에서 제거하도록 되어 있다.

식품안전검사국은 리콜 등급을 보건위생을 해칠 가능성이 분명한(reasonable) 경우 1급, 적은(remote) 경우 2급, 안전한 식품을 3급으 나누고 있는데 이번 리콜 조처는 2급으로 분류됐다.

하지만 이번에 리콜 대상이 된 쇠고기는 3월28일 이전에 포장된 냉동머리고기 184여t으로 미국 전역의 배급업체와 도매상에 이미 판매된 제품이어서 미 검역당국의 허술한 체계를 드러낸 또하나의 사례가 기록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식품안전국(FSIS)은 4일 뉴욕 소재 '구어메이 부티크'(Gourmet Boutique LLC)의 각종 육류제품에서 리스테리아균감염 가능성이 발견돼 '1급 리콜조치'를 내렸다고 밝혔다.

리스테리아균은 노약자와 항암치료를 받는 사람들에게 위험하며 특히 임산부에게 식중독과 함께 유산이나 사산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에 리콜조치된 육류제품들은 지난달 19일부터 24일까지, 냉동육은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4월 24일까지 각각 출하된 것들로 쇠고기와 돼지고기, 닭고기, 칠면조 등이다.

이런 사례들은 이번 한미 쇠고기 협상으로 미국에서도 상대적으로 양호한 도축장으로 우리 정부가 승인하는 권한마저 포기했다는 점에서 더욱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2007년까지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되는 도축장은 한국 정부가 승인한 도축장이었으나, 이번 협상으로 이명박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되는 도축장의 승인권을 미국 정부에 넘겨주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광우병이 또 발생해도 우리 정부가 즉각적으로 수입금지 조치를 내릴 권한도 포기했다. 이런 근본적인 문제 때문에 '재협상은 없다'던 정부도 결국 한 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4일 당정협의 이후 박재완 청와대 정무수석은 "기존 협상에 대한 개정 요구에 대해 긍정 검토할 수 있지만, 이것이 재협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미국과 대만의 회의 결과에 따라 추이를 봐 가며 검토할 수도 있다"고 '조항을 보완하기 위한 추가 협상'은 가능하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이승선/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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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배포 해서 죄송.. ^^
Posted by 따봉맨